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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조현병 딸 돌보며 29년을 투사처럼… 우리 부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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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11-01 09: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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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공존의 질병으로
전순기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강원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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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 조현병을 앓는 딸 영미씨를 돌봐온 전순기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강원지부장의 가장 큰 고민은, 부부가 죽은 뒤에 홀로 남겨질 딸을 돌볼 이가 없다는 것이다. 홍인기 기자

믿음의 집안이었다.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던 딸은 신학대학생이었다. 멀쩡하던 딸이 어느 날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한 달간 감기약만 먹였다. 6개월 뒤에야 찾아간 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이 내려졌고, 부녀는 한동안 신을 원망했다.

전순기(78)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강원지부장은 딸 영미(49)씨가 스무 살 되던 해 진단을 받고 나서부터 꼬박 29년 딸 곁을 지켜왔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시설과 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아버지는 여든을 코앞에 둔 노인이 됐고, 딸은 쉰 살을 앞둔 중년이 됐다.

“병원에 입원을 시키면 한동안은 괜찮아요. 그래서 퇴원하면 또 증상이 찾아오고. 처음에는 1년에 여섯 번이나 입ㆍ퇴원을 반복했어요.” 병원에 있으면 무기력했고, 병원을 나오면 막막했다. 무엇보다 동네 어느 병원을 찾아가도 영미씨에게 제대로 된 재활을 권하거나 상담을 해주는 곳이 없었다. 복잡한 영어로 쓰여있는 약을 처방하고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먹이라’고만 했다.

“시설에도 보내봤지요. 한 80명 정도 수용하는 곳이었나. 석 달을 못 넘기더라고요. 참지를 못하고 폭발하니 데리고 나오는 수밖에요.” 무엇보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기도원에 잠시 맡겼을 때 찾아 간 딸의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기도원장이 병이 온 게 ‘죄’ 때문이래요. 그래서 맞아야 낫는다고.” 그때 알게 됐다고 했다. 신에게 배신당해서도 아니고, 죄를 지어서도 아니다. 딸은 그저 아플 뿐이라는 것을 그제야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는 기도원 같은 시설을 찾지 않기로 했다.

딸에게 병이 찾아왔으니, 병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협력기관인 용인정신병원이 주최하는 ‘정신장애 가족강사 양성 프로그램(Family link)’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환자 행동의 이유와 유형, 약의 부작용 등을 상세하게 공부했다. 정신질환자 가족들과 함께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를 꾸렸다.

전 지부장은 환자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와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을 답답해 한다. “정신건강복지센터라고 만들어 놨지만 우리가 사는 강원도 원주에는 딱 하나예요. 거기서 뭘 해줄 수 있겠어요? 가끔 와서 밥은 잘 먹는지 물어보는 거, 그게 다예요.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환자한테 전담 심리상담사가 붙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프다고 하면 약을 늘리고, 그러다 환자는 약에 중독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죠. 약이 전부는 아니에요.”

최근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낮에는 지역사회나 병원의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밤에는 집으로 귀가하는 다양한 회복서비스가 조현병 환자 치료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환자가 사회생활과 재활치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사회 내에서 방치되고 버려지는 일을 막고 있는 것이다.

영미씨도 물론 ‘사회생활’을 시도하기는 했다. 그러나 복지관에서 소개해주는 일들은 선물을 포장하거나 인형 눈을 붙이는, 개개인의 특성을 뭉뚱그리거나 지워버린 단순 노동에 불과했다. “우리 딸은 피아노를 곧잘 치는데 그런 걸 활용할 길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 흥미도 못 붙이고 금세 그만두는 거죠.”

결국 일을 하지 않는 딸이 발을 붙일 수 있는 곳은 집뿐이었다. 답답해지면 가끔씩 밖으로 뛰쳐나가지만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노려보거나 멍한 상태로 거리를 헤매다 행인들과 괜한 시비가 붙는다. 그래도 전 지부장은 그걸 딸 ‘탓’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거거든요, 얘의 상태를. 그러면 차근히 사람들한테 설명을 해 주면 돼요. 이 사람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요.”

딸의 병은 가족들에게 여러 생채기를 남겼다. 약물 부작용으로 인해 식탐이 많아진 영미씨는 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살이 쪘다. 약제의 성능이 정교하지 않았던 과거, 대표적인 정신질환 치료물질로 여겨져 온 리튬 성분이 몸에 축적되면서 왼쪽다리는 괴사 직전 상태까지 이르렀다. 최근에는 딸을 보살피던 아내에게 경미한 치매 증상이 찾아왔다.

전 지부장의 가장 큰 고민은 부부가 세상을 떠난 이후다. 영미씨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서다. “(영미가) 아무리 아파도 참 잘 웃거든요. 그래 네가 그 맑은 마음 덕에 버티는구나 해요. 우리가 없어도 저렇게 웃으면서 잘 지내면 좋겠는데, 그게 될까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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